
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시작하는 과정에서 환자분들과 보호자분들이 가장 많이 마주하게 되는 선택지 중 하나가 바로 항암제 임상연구 참여입니다.
“교수님은 하자고 하시는데, 이 연구 정말 괜찮은 건가요?”
이 질문은 제가 혈액종양내과에서 임상연구간호사, 임상연구코디네이터로 일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입니다. 이 글은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글이 아니라, 결정에 필요한 정보와 시야를 최대한 솔직하게 드리기 위한 글입니다. 선택은 언제나 환자 본인의 몫이어야 하니까요.
암환자, 항암제 임상연구 참여하는게 좋을까요? 나쁠까요?

1. 암 치료는 ‘카드 게임’과 비슷합니다 – 임상연구의 의미
암 치료는 흔히 무기를 하나씩 꺼내 쓰는 전쟁에 비유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비유가 굉장히 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암 치료에는 차수가 있습니다. 1차 치료를 시작하고, 효과가 떨어지거나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면 2차, 3차 치료로 넘어갑니다. 문제는 이 치료 카드의 개수가 암의 종류와 환자의 상태에 따라 제한적이라는 점입니다. 어떤 암은 쓸 수 있는 카드가 많지만, 어떤 암은 처음부터 선택지가 많지 않습니다.
임상연구 참여는 이 제한된 카드 사이에 ‘중간 카드 한 장’을 더 얹어주는 선택지라고 보시면 이해가 쉽습니다. 아직 기회가 남아 있을 때 다른 옵션을 하나 더 시도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대학병원에서 진행되는 항암제 임상연구는, 표준 치료를 완전히 대체하기보다는 표준 치료와 비교하거나 병용하는 형태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즉, 환자에게 전혀 검증되지 않은 선택을 강요하는 구조는 아닙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임상연구는 “현재 치료 전략 안에서 한 번 더 선택지를 넓히는 방법”에 가깝습니다. 이 점을 이해하시면 임상연구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2. 항암제 임상연구는 ‘인체실험’일까요? – 2상·3상 시험의 실제
환자분들과 보호자분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가
“그거 인체실험 아니에요?”
입니다.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병원에서 암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되는 항암제 임상연구, 특히 신약을 제공하는 연구는 대부분 2상 또는 3상 임상시험입니다.
- 2상 임상시험: 이미 사람에게 투여 가능한 약이라는 전제 하에, 효과가 있는지, 비교적 안전한지를 확인하는 단계
- 3상 임상시험: 기존 표준 치료와 비교하여
- 효과가 비슷한지
- 효과는 비슷하지만 부작용이 덜한지
- 혹은 효과가 더 좋은지를 평가하는 단계
즉, 흔히 떠올리는 “이 약을 사람에게 처음 써본다”는 단계는 이미 1상에서 끝난 상태입니다. 1상 임상시험에서는 어느 정도 용량까지 안전한지, 사람에게 투여 가능한 약인지를 철저하게 확인합니다. 이 단계를 통과하지 못한 약은 2상, 3상으로 절대 넘어오지 못합니다.
더 중요한 점은,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임상시험은 식약처와 병원 윤리위원회(IRB)의 승인과 감시 하에 진행된다는 사실입니다. 연구 시작 전 승인, 진행 중 정기 보고, 문제 발생 시 즉각 보고가 의무입니다. 실제로 글로벌 임상연구 중에서도 외국에서는 진행되지만 우리나라 식약처를 통과하지 못해 국내에서 못 하는 연구도 적지 않습니다. 보수적으로 보면 안전하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상대적으로 강력한 여러 규제 때문에 우리나라 환자들이 치료 기회를 놓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항암제 임상연구를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의미의 “무분별한 인체실험”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3. 그래도 ‘100% 안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 임상연구의 현실적인 한계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이런 생각이 드실 수 있습니다.
“그럼 임상연구는 거의 좋은 거 아닌가요?”
하지만 저는 그렇다고 무조건 추천할 수는 없다고 말씀드립니다.
임상연구의 가장 큰 한계는 장기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기본적인 인체 적용 안전성은 확보되어 있지만, 이 환자의 몸에서 어떤 반응이 나올지는 실제로 써봐야만 알 수 있습니다. 아주 좋은 반응이 나올 수도 있고, 예상보다 효과가 없을 수도 있으며, 드물지만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 부분에서 꼭 짚고 가야 할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이건 임상연구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항암제가 마찬가지라는 점입니다. 100명 중 98명에게 잘 듣는 약이 있어도, 내가 그 98명 중 하나일지, 2명 중 하나일지는 써보기 전에는 아무도 모릅니다. 오래 사용해 온 항암제라고 해서 갑작스러운 심각한 부작용이나 예기치 못한 사망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 치료라는 것은 통계 위에 개인의 몸을 얹는 선택입니다. 교수님들이 설명하는 내용은 이론적이고 통계적인 근거에 기반합니다. 그 말이 틀렸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숫자가 나에게 그대로 적용될 것이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이 현실을 알고 선택하는 것과, 모른 채로 선택하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임상연구는 ‘원한다고 다 할 수 있는 선택’은 아닙니다
임상연구 참여는 현실적으로 환자 본인이 원한다고 해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임상연구에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선별 과정이 있고, 이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만 연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먼저 1차로는 암종, 병기, 병리조직검사 결과 등 연구의 기본적인 적응증에 맞는지 여부를 확인합니다. 이 단계는 대부분 담당 교수님께서 이미 검토하신 상태에서 환자분께 임상연구를 권유하시게 됩니다.
그 다음 단계가 흔히 말하는 ‘스크리닝(Screening)’ 과정입니다. 스크리닝은 환자의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확인하여, 연구계획서에 명시된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지를 하나하나 점검하는 과정입니다. 쉽게 말해 환자의 몸을 한 번 더 전체적으로 훑어보는 검사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 과정의 목적은, 임상연구 진행 중 예상치 못한 이상반응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환자들을 사전에 제외하기 위함입니다. 예를 들어 심장 기능에 문제가 있거나, 간 수치가 많이 상승되어 있거나, 현재 활동성 감염이 있는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런 상태의 환자분들이 연구에 참여한 뒤 이상반응이 발생할 경우, 실제로 약물과의 관련성 여부와 상관없이 모두 이상반응으로 기록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연구 입장에서는 비교적 연구를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환자, 다시 말해 전반적인 상태가 비교적 좋은 대상자를 선별하게 됩니다.
다만, 이미 시행한 검사 결과를 토대로 대부분의 스크리닝 기준을 미리 확인한 후 임상연구를 권유하기 때문에, 실제로 스크리닝에서 탈락하는 경우(Screening failure)가 아주 흔한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크리닝은 말 그대로 ‘정밀하게 확인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환자 본인도 예상하지 못했던 검사 이상이 발견되어 연구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는 임상연구를 하고 싶어도 참여하지 못하는 환자분들이, 참여하는 환자분들보다 더 많은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임상연구는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조건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4. ‘기다림’이라는 변수 – 임상연구 참여 전 반드시 고려해야 할 시간 문제
임상연구 참여를 결정하면, 동의서 서명부터 첫 투약까지 보통 3~4주 정도의 준비 기간이 필요합니다. 이 시간에는 각종 검사, 기준 확인, 서류 절차가 포함됩니다. 암 환자에게 이 3~4주는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환자분들뿐 아니라 교수님들께도 상당한 부담입니다. 다행히 대부분의 암은 특별히 공격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3~4주 사이에 급격하게 악화되는 경우는 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수님들은 “기다릴 수 있다”고 설명하십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 말은 ‘확률적으로 그렇다’는 의미이지, 100%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특히 처음 암을 진단받고 첫 치료를 앞둔 환자, 혹은 치료 도중 질병 진행으로 약을 바꿔야 하는 환자에게 이 기다림은 심리적으로도 매우 큰 스트레스가 됩니다.
제가 함께 일하는 교수님의 경우, 진행이 빠를 것 같다고 판단되는 환자에게는 임상연구를 권하지 않습니다. 연구 담당자에게 예상 소요 기간을 먼저 확인하고, “너무 길다”고 판단되면 바로 임상연구를 배제합니다.
하지만 모든 의료진이 같은 기준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환자와 담당 교수 사이의 충분한 대화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실 환자는 교수님의 말을 믿는 것 말고는 크게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어려운 일입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런 3~4주 정도의 준비기간을 거치다 보면 임상연구 참여를 희망했고 준비기간동안 검사에 열심히 검사에 응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Screening Fail)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는 환자분이 상태가 나쁘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위에서 설명 드렸던 것 처럼 연구를 안전하게 진행하기 위한 기준에 맞지 않는 부분이 발견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 점은 임상연구 참여를 고민하실 때, 미리 알고 계시면 좋을 현실적인 부분 중 하나입니다.
5. 최근 임상연구의 흐름과 실제 장점 – 관심과 관리, 그리고 삶의 질
최근 항암제 임상연구의 큰 흐름 중 하나는 이미 성적이 좋은 면역항암제를 병용군으로 포함하는 연구가 많다는 점입니다.
특히 해외에서는 허가되었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허가가 안 되었거나, 허가는 되었지만 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약값이 부담되는 경우, 임상연구는 환자에게 현실적인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특히 최근에는 Pembrolizumab(이하 키트루다)를 병용군으로 포함하는 임상연구가 많습니다. 현재 임상에서는 키트루다가 성적이 좋아 굉장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어서, 키트루다 병용군이 있는 임상 연구라면 병원에서 교수님들이 환영하는 추세입니다. 본인의 환자들에게 약을 제공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니까요.
또 하나의 현실적인 장점은 임상연구에 참여하면 의료진의 관심과 관리 밀도가 높아진다는 점입니다. 정기적인 방문, 세밀한 평가, 그리고 연구담당자(연구간호사·코디네이터)의 지속적인 관찰이 이루어집니다.
요즘 임상연구는 삶의 질(QoL, Quality of Life)에도 많은 비중을 둡니다. 방문마다 설문지가 있지는 경우가 많은데, 정답은 없습니다. 설문지의 결과가 연구를 진행하는데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습니다. 힘든 건 힘들다고, 괜찮은 건 괜찮다고 솔직하게 체크하시면 됩니다.
연구절차에서 요구하는 샘플은 가능하면 병원에서 수행하는 피검사와 함께 채혈하지만, 시점에 따라 따로 채혈해야하는 샘플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의 경우 보통 연구 초반에는 채혈하는 시점이 많으나 뒤로 갈수록 줄어들게 됩니다. 물론 연구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채혈이 힘든 분들에게는 분명 부담이 될 수 있는 요소입니다. 이런 부분은 동의서 서명 전 반드시 연구담당자에게 구체적으로 질문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 임상연구 동의서 서명 전 연구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있는 경우 >
1. 치료 및 질병에 관련된 질문: 교수님에게 질문
(ex. 이 연구에 참여 안하게 되면 어떤 치료를 받게 되나요?, 신약은 제가 원래 하려던 치료와 어떤 점이 다른가요? 등)
2. 연구 절차에 관련된 질문: 연구담당자에게 질문
(ex. 방문 주기가 어떻게 되나요?, 방문할 때 피는 얼만큼 뽑아야 하나요? 등)
그래서 결론은? – 제가 드릴 수 있는 가장 솔직한 답
이 글을 읽다 보면 결국 이런 생각이 드실 겁니다.
“그래서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제 결론은 단순합니다.
임상연구 참여로 얻을 수 있는 득과 실을 정확히 알고 결정하셔야 합니다.
개인적인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 참여 가능한 임상시험이 있고
- 현재 상태에서 3~4주 정도 기다리는 데 큰 무리가 없고
- 담당 교수님을 신뢰할 수 있고
- 약간의 번거로움을 감수할 수 있다면
임상연구 참여를 한 번쯤은 충분히 고려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임상연구 자체가 너무 두렵고, 과정이 큰 스트레스로 다가온다면 아무리 좋은 약을 제공하는 연구라도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는 치료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
그 선택을 추천한 의료진이나 보호자를 원망하게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기준은 하나입니다. 이 선택을 ‘내가 감당할 수 있는가’ 그 질문에 솔직하게 답하시는 것이, 어떤 의학적 수치보다 중요합니다.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다시 묻고, 다시 고민하셔도 됩니다. 암 치료에서 신중함은 결코 늦음이 아닙니다.
이 글은 SIT(의뢰자 주도 임상연구) 기준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IIT(연구자 주도 임상연구)는 연구 목적과 성격이 다소 달라, 다음 글에서 따로 설명드릴 예정입니다.
참고로,
SIT는 MSD, Pfizer와 같은 제약회사에서 주도하는 신약 또는 신약 병용 연구가 대부분입니다. IIT는 서울대학교병원, 고려대안암병원 등 대학병원 연구자가 주도하여, 이미 사용 중인 항암제를 다른 암종이나 치료 전략에 적용해 보는 연구가 주를 이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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