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선 글 「암환자, 항암제 임상연구 할까 말까?」에서는 임상연구 참여를 고민하는 분들이 가장 많이 궁금해하시는 부분, “이 연구를 하면 나에게 실제로 도움이 될까?”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 연장선에서, 임상연구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기준 하나를 설명해보려고 합니다.
바로 이 임상연구가 ‘누가 주도하는 연구인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임상연구는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해 보여도, 연구를 주도하는 주체에 따라 목적, 구조, 비용, 그리고 환자분이 느끼게 되는 경험이 꽤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오늘은 임상연구를 SIT와 IIT, 이 두 가지로 나누어 차근차근 설명드려보겠습니다.
전문 용어는 최대한 풀어서, 실제 환자분 입장에서 이해하시기 쉽게 이야기해볼게요.
1. 임상연구는 왜 SIT와 IIT로 나뉠까요?
임상연구는 크게 보면 “약을 써보는 연구”이지만, 그 이면에는 누가 이 연구를 기획했고, 왜 이 연구를 하는지라는 질문이 항상 따라옵니다. 이 기준에 따라 임상연구는 보통 두 가지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의뢰자 주도 임상연구(SIT, Sponsor-Initiated Trial)이고,
두 번째는 연구자 주도 임상연구(IIT, Investigator-Initiated Trial)입니다.
두 연구 모두 공통적으로 중요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앞선 글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임상연구에 참여한다는 것은 ‘추가 치료의 기회’가 생긴다는 의미라는 점입니다. 표준 치료만으로는 선택지가 제한될 때, 임상연구는 환자분께 또 하나의 치료 카드를 만들어 줍니다. 이 점은 SIT든 IIT든 동일합니다.
하지만 연구의 목적과 구조는 상당히 다릅니다.
SIT는 제약회사가 신약 개발을 위해 직접 기획하고 의뢰하는 연구입니다.
반면 IIT는 대학병원이나 학회, 혹은 특정 연구자가 학술적·공익적 목적을 가지고 시작하는 연구입니다.
이 차이는 단순한 명칭의 차이가 아니라, 연구가 얼마나 엄격하게 관리되는지, 환자 부담은 어떤 방식으로 발생하는지, 사용되는 약이 어떤 성격인지까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따라서 “내가 참여하려는 임상연구가 SIT인지, IIT인지”를 아는 것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서, 연구를 이해하고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정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 SIT(의뢰자 주도 임상연구)의 특징 – 신약 개발을 위한 연구
SIT는 보통 제약회사가 주도하는 임상연구입니다. Merck, Pfizer처럼 우리가 이름을 들어본 글로벌 제약회사들이
자사에서 개발 중인 신약의 효과와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해 진행합니다. 이 연구의 목적은 비교적 명확합니다.
“이 약이 정말 효과가 있는지”,
“어떤 부작용이 나타나는지”,
“어떤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지”
를 입증합니다.
궁극적으로는 허가와 시판으로 이어지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즉, 영리적인 목적이 분명한 연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SIT는 연구 구조가 매우 촘촘하고 엄격합니다. 연구계획서는 굉장히 상세하게 짜여 있고, 스크리닝 과정도 까다롭습니다. 조금이라도 기준에서 벗어나면 연구 참여가 어렵거나, 중간에 연구에서 제외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비용 구조입니다. SIT는 영리 목적의 연구이기 때문에, 연구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검사나 치료는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습니다. 대신 이 비용을 모두 제약회사에서 부담합니다. 환자 입장에서는 연구와 관련된 검사 비용을 따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SIT에서는 병원 방문에 따른 부담을 줄이기 위해 교통비 명목의 지원금이 지급됩니다. 방문당 약 5만~10만 원 정도가 일반적이며, 연구에 따라서는 교통비나 식비를 실비로 별도 청구할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절차가 다소 까다로운 편이어서 연구 담당자의 안내를 잘 따라야 합니다.
SIT에서 사용하는 약물은 대부분 임상시험용 의약품입니다. 아직 이름이 정해지지 않은 경우가 많아 PF-000000, MK-0000, AZD0000 같은 코드명으로 불리는 경우가 흔합니다. 이는 곧, 완전히 새로운 약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새로운 부작용이나 예상하지 못한 독성이 발생할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물론 이런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식약처, IRB, CRO, 글로벌 본사까지 다층적인 감시 체계가 촘촘하게 작동합니다. 그래도 ‘신약’이라는 특성 자체가 주는 불확실성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3. IIT(연구자 주도 임상연구)의 특징 – 현실적인 질문에서 출발한 연구
IIT는 보통 대학병원이나 학회, 혹은 특정 연구자가 주관하는 임상연구입니다. 이 연구들은 대체로 이론을 바탕으로한 학술적인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질문들입니다.
“이 약을 다른 암종에서도 써볼 수 없을까?”
“이미 쓰고 있는 약을 다른 치료 단계에서 사용하면 어떨까?”
“두 약을 같이 쓰면 효과가 더 좋아질까?”
즉, IIT는 이미 임상 현장에서 사용 중인 약을 다른 방식으로 활용해보는 연구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환자분들이 약 이름을 들어보면 “아, 이 약은 들어본 적 있어요”라고 말씀하시는 경우도 흔합니다.
IIT의 또 다른 특징은 비영리성입니다. 상업적 이익보다는 학술적 가치, 진료 지침 개선, 보험 급여 확대 같은 공익적인 목적이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이 때문에 IIT는 심사평가원의 요양급여 적용 신청을 통과하면 연구와 관련된 검사나 치료에도 건강보험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경우, 연구와 관련된 절차라 하더라도 환자 본인 부담금은 발생합니다.
또한 IIT에서는 SIT처럼 교통비나 방문 지원금이 지급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 점은 환자분 입장에서 아쉬울 수 있는 부분입니다.
연구 운영 측면에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IIT는 식약처와 IRB의 관리·감독을 받기는 하지만, SIT처럼 글로벌 본사까지 포함된 다층적인 감시 구조는 아닙니다. 그래서 연구계획서가 상대적으로 유연하고, 연구자의 임상적 판단이 반영되는 여지가 조금 더 큽니다.
무엇보다 환자분들이 많이 느끼는 차이는 심리적인 안정감일 것입니다. 이미 익숙한 약을 사용하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독성에 대한 두려움은 상대적으로 적고, 부작용이 발생하더라도 의료진이 충분히 경험을 가지고 대처할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 SIT (의뢰자 주도 임상연구) | IIT (연구자 주도 임상연구) | |
| 연구 주도 | 제약회사 | 대학병원, 학회, 연구자 |
| 연구 목적 | 신약 개발, 허가 및 상업화 | 학술적 목적, 진료 지침 개선, 보험 급여 확대 |
| 연구 성격 | 영리 목적 | 비영리 목적 |
| 사용 약물 | 임상시험용 신약이 많음 | 기존에 사용 중인 약물이 많음 |
| 약물 이름 | 코드명(PF-XXXX, MK-XXXX 등)인 경우가 많음 | 익숙한 약 이름인 경우가 많음 |
| 신약 여부 | 완전히 새로운 약일 가능성 높음 | 완전한 신약은 아님 |
| 부작용 특성 | 새로운 독성·부작용 가능성 상대적으로 높음 | 의료진이 익숙한 부작용이 대부분 |
| 연구계획서 | 매우 엄격하고 세부 기준이 많음 | 비교적 유연한 편 |
| 스크리닝 기준 | 까다롭고 탈락 가능성 높음 | 상대적으로 덜 엄격함 |
| 관리·감시 구조 | 식약처, IRB, CRO, 글로벌 본사 등 다층 구조 | 식약처, IRB 중심 |
| 검사·치료 비용 | 건강보험 적용 ❌ → 제약회사에서 전액 지원 | 요양급여 적용 시 건강보험 적용 ⭕ |
| 환자 본인부담 | 연구 관련 비용 부담 없음 | 연구 절차 비용도 환자 부담 |
| 교통비·지원금 | 방문당 약 5~10만 원 지원하는 경우 많음 | 교통비 지원 없음 |
| 환자 체감 부담 | 방문·검사는 많지만 비용 부담은 적음 | 비용 부담은 있으나 절차는 비교적 단순 |
| 심리적 느낌 | “완전히 새로운 약을 쓰는 연구” | “기존 약을 다른 방식으로 쓰는 연구” |
4. SIT와 IIT, 비유로 이해해보기
조금 더 쉽게 이해하실 수 있도록 비유를 들어볼게요.
SIT는
세상에 처음 나온 새로운 과일을 먹어보는 것에 가깝습니다.
어떤 맛일지, 어떤 반응이 나타날지 아직 정확히 모릅니다.
그래서 아주 조심스럽게, 정해진 방법대로 한 입 한 입 확인하면서 먹습니다.
반면 IIT는
원래 먹던 사과를 새로운 방식으로 먹어보는 것에 가깝습니다.
소금을 찍어 먹어보기도 하고,
땅콩버터를 발라 먹어보기도 하면서
“이렇게 먹으면 더 좋을까?”를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둘 다 의미 있고,
둘 다 환자분께는 새로운 선택지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성격이 다를 뿐입니다.
5. 환자 입장에서 SIT와 IIT를 구분하는 쉬운 방법
환자분 입장에서 “이 연구가 SIT인지, IIT인지”를 완벽하게 구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비교적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두 가지 정도 있습니다.
첫 번째는 연구동의서 맨 앞의 연구명입니다.
약물이 코드명으로만 적혀 있다면 SIT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예외적으로 IIT에서도 코드명이 사용되는 경우가 아주 드물게 있긴 합니다.
두 번째는 연구동의서에 적힌 의뢰자 또는 주도기관입니다.
SIT의 경우에는
의뢰자에 제약회사 이름이 명확히 적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IIT는
주도기관으로 병원명이나 학회명,
혹은 연구책임자(본원 교수님)만 기재된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담당 교수님이나 연구 담당자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입니다.
“이 연구는 제약회사 연구인가요, 연구자 주도 연구인가요?” 라고요.
아마 질문을 받으면 오히려 “이런 부분까지 궁금해하시다니” 하고 깜짝 놀라실지도 모릅니다.



알고 있으면 좋은 이유
현실적으로는 환자분께 여러 개의 임상연구가 동시에 제안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담당 교수님께서
현재 상태에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연구 한 가지를 추천해주시거나, 선택 가능한 연구 자체가 한 가지뿐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IT와 IIT의 특징을 알고 있다면 연구동의서를 읽을 때 훨씬 명확하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내가 참여하는 연구가 SIT라면 연구를 통해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추가로 부담해야 할 것은 없는지 동의서에 적힌 내용을 꼼꼼히 확인하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반대로 IIT라면 “완전히 새로운 신약은 아니구나”라는 점에서 신약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은 내려놓으셔도 괜찮습니다.
임상연구는 무조건 해야 하는 것도, 무조건 피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알고 선택할수록 덜 불안해질 수 있는 선택입니다. 이 글이 임상연구 앞에서 고민하고 계신 분들께 조금이나마 판단의 기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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